전설의 술 ? 가양주.
전설의 술 ? 가양주.
家(집 가)釀(빚을 양)酒(술 주) -집에서 빚는 술'
어릴적 국사 시간에
고려 청자의 우수성에 대해서 배울때면
말미에 항상 선생님들이 안타깝다고 이야기를 하곤 했다.
더 이상 이 고려 청자를 만들 수 없다고,
청자 만드는 기술이 사장되었고
고려 시대의 청자들이 조선에 와서
백자로 대체된 된 큰 이유도 이러하다고 했다.
청자 제조 기술이 사장되어서,
더 이상 만들수 없게 된 것 이었다.
결국 조선의 백자, 막사발과 같이
우수하고 아름 답다고 교육 받았던 도자기는
실제로는 청자를 만들 수 없는
당시의 차선이 었다.
이런 청자 처럼 사라져버린
전설의 술이 바로 “ 집에서 만드는 가양주“ 이다.
삼국 시대, 통일 신라, 고려, 조선
그리고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지역 마다, 가문 마다의 독특한
제조 레시피를 갖고 생산되던 가양주들이
싸그리 멸종해 버렸다.
수사적 표현의 멸종이 아니라
아래 그래프와 같이30만개의 제조장이
진짜 1곳만 남을 정도로 사라졌다.
일제강점기.
총독부에서는 가정에서 술을 만들지 못하게 했고,
희망하는 경우에는 허가를 받도록 허가를 내주는 방식으로 통제했다.
또한 한국 가양주의 주원료인 쌀의 경우에는
일본의 태평양 전쟁과 만주 확장 등
증가하는 군인의 군량미로 사용하기 위해서
강점기 후반에는 제조 자체를 금지 시켜 버렸다.
그렇게 36년의 식민지 세월과 광복 이후의
혼란러운 정국, 6.25 등을 겪으면서
근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힌국인들은
가양주를 빚으며 한가하게 풍류를 즐길 수는 없었다.
생존을 위해서 사람들이 사는 사이
어느새 가양주는 고려 청자처럼
사람들이 만드는 기술을 잊혀지게 되었다.
반대로 다양하고 유통하기 쉬운
소주, 맥주 , 막걸리 등이 시장에서
널리 퍼지며 자연 스럽게 수 천 개의 가양주들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다시 2000년
한국은 성장했고 이제 여유를 즐겨 볼만하게되었다.
사람들이 잊혀졌던 가양주의 기억을 떠올려서
제조하고 뭔가 즐겨 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수백 가지가 넘는 일본의 사케
중국의 백주와 같이
한국의 가양 주도 하나 둘 복원 되어
과거와 같이 번성 하기를 기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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